삶 이야기(건강 등)

어미는 전쟁터 군수물자 성노예였다

kbd112 2018. 3. 1. 09:08



어미는 전쟁터 군수물자 성노예였다
[안내] 본인이 본 소식지의 수신을 거부하지 않았는데 어느날부터 메일 수신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스팸메일함을 확인해 주십시요. 만약 스팸메일함에 있으면 스팸 설정을 해제하시면 됩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하단의 '길목편지 보내기'에서 다시 수신을 신청해 주십시요.
묵상과 성찰
딸들에게
- 박훈
내 딸들아. 어렵게 얻었던 내 딸들아
어미의 힘겨운 이야기를 오늘은 들려줘야 겠구나.
어미는 정신근로대가 아니었다.
어미는 제국의 위안부가 아니었다.
어미는 종군위안부가 아니었다.
어미는 전쟁터 군수 물자 성노예였다.

1943년. 17살.
전쟁터 일본군인들 밥과 빨래를 해주거나
간호조무사 노릇을 하고 돈 많이 준다는 면직원 말에 속아 
가난에 찌든 식구들을 뒤로 한 채 배를 탔단다.
어미는 군수 물자였다. 
최전선 어디에도 어미 같은 사람들은 있었고 
끌고 다니지 못하면 죽여 이국땅에 묻히는 병참 물자였단다.

누가 어미 같은 사람들은 매춘 했다고
부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녔다고 하면서
위안부(慰安婦)라 하더라.
부산에서 싱가포르로 버마로 타이로 
끌려 다니면서 하루 많게는 30명 군인들
상대하고 받은 전표가 있으니 매춘이라 하더라.

딸들아 어미도 그렇게 생각했다.
총칼 숲이 우거진 곳에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어떤 군인을 만나 사랑하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였단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체념이었단다. 
임신되면 지우기를 반복하고 성병에 걸리면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 죽어가는 언니 동생들을
보면서 오늘도 살기 위해 군인들을 밤이고 낮이고 
몸으로 받았단다. 그게 매춘이라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어미는 고향땅에 갈 수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매춘한 년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화냥년이라고 욕 할까봐. 더럽혀진 몸이라 생각해 
그리운 고향땅, 엄마, 아빠 있는 고향땅을 가지 못했다. 
입 꾹 다물고 타향살이 행상하고 술집 작부 생활하다 
어느 날 네 아비들을 만나 버려지고 너희들을 키워왔다.

딸들아 어미는 이제 말을 해야겠다.
70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죽기 전에 말해야겠다.
어미는 정신근로대가 아니었다.
어미는 제국의 위안부가 아니었다.
어미는 종군위안부가 아니었다.
어미는 전쟁터 군수물자 성노예였다고.

딸들아 어미의 유언이다.
하늘뜻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 6)
참여
나눔과 소통
불가역? -김석수
일본군 위안부 협상타결하면서, 앞으로 한국은 일본에게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불가역'이란 말을 썼는데 외교부에 있는 애들이 정신이 있는 애들인지 모르겠다. 독일은 현직 수상이 유태인 추모비에 무릎끓고 사죄하면서, 틈나는 대로 끝없이 사죄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에 대해 '이제는 끝'이라고 스스로 입에 자꾸를 채우다니. 한 나라의 외교부와 정권이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한 것이라고 본다. 여러 방면에서 처한 우리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외교기술주의에 빠져 철학과 정신이 나간 짓을 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앞으로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이 문제를 되짚을 수 없이 대못을 박아버렸다는데 있다. 기껏해야 임기 5년을 위임받은 박근혜정권이 무슨 권한으로 이 문제를 결론내렸는지 의심스럽다. 이번 정부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이 필요할 듯하다.
독도도 어느날 몇백억에 팔아먹을까? -김응교
이완용이 이렇게 나라를 넘겼겠구나. 이완용도 그랬지.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화를 위한 화해였다고. 이완용도 딴에는 자료 모으고 연구하며 머리 굴리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자기는 편하니까 백성들이 그렇게 모멸감을 가질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한나절에 지진처럼 비극을 목도했다. 거짓 화해가 피해자를 한번더 짓밟고 대한민국을 족쇄에 얼구어 놓았다. "배상"도 아니고 거지처럼 돈이나 받은 민족이 되었구나. 피해자 할머니와 단 한번의 대화나 보고도 없었던 거짓합의, 윤병세 외무부의 외교적 참사다. 국민 전체가 모멸이요, 거지다. 거지도 이런 개거지가 없다. 독도도 어느날 몇백억에 팔아먹을까.
값싼 사과 -김응교
아직 협상완결 아니다. 돈으로 하는 사과가 가장 값싼 사과다. 수 천 명 중 단 한 명의 소녀가 끌려 갔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사과한다면 일본 정부가 대사관 앞에 소녀비를 그대로 남겨야 한다. 일본 대사관이 소녀상을 기린다면 일본의 양심으로 오히려 국제사회에 내놓을만한 좋은 상징이 될 것이다. 진정 사과한다면 소녀상 철거해달라고 말 못한다. 역사가 흘러 상처가 아물어 소녀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사과하는 사람들 자세다. 빌리브란트 독일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하여 유대인 위령탑 아래에 무릎꿇고 사죄했듯이,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현지에서 사과했듯이, 아베가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배상에 앞서 다시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당신들 스스로 사죄의 비를 세우고, 당신 교과서에 기록해 두는 것이다. [더보기▶]
[나눔과 소통 안내] 공감편지 길목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올려진 글에서 선택하여 편집합니다. 매일 발송되기 때문에 사전에 글쓴이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게재됩니다. 본인의 글이 뉴스레터를 통해 공유되기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응답메일로 의사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매일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묵상/기도의 시간을 가지며, 아픈 이웃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고, 참여와 실천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길목협동조합이 제공합니다. 지인에게 본 뉴스레터를 보내려면 아래 버튼을 클릭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