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야기(건강 등)

이양역지(以羊易之)

kbd112 2018. 4. 14. 07:29



이양역지(以羊易之)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정치가는 하급(下級)이다.


도락산(회원)



맹자의 곡속장(觳觫章)에 이양역지(以羊易之)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이렇다.



하루는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나라 선왕이 소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고는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물었다. 그는 “예. 전하. 흔종(釁鍾)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흔종이란 종(鐘)을 주조한 후에 소를 죽여 그 피를 바르는 의식을 말한다. 

그런데 그 소가 자신의 죽음을 눈치 챘던지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고 있었다.



선왕은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그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못 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전하. 그러면 흔종을 폐할까요?”라고 물었고, 왕은 “흔종을 어찌 폐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도록 하라(以羊易之)”고 지시했다.



선왕께서 흔종을 할 때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라”고 하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 소문이 맹자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맹자는 선왕을 찾아가 전하께서 흔종을 할 때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라고 명하신 일이 있었는지 묻고, 또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왕은 “죄 없이 死地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자 맹자는 “그러면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불쌍하기는 양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맹자의 놀라운 눈을 발견하게 된다. “전하께서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하신 이유는 

눈물 흘리는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에 生死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눈인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정치가는 하급(下級)이다. 

혁명가는 이 차이가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다. 종교가는 이 차이가 작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