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야기(건강 등)

관찰사의 결단('선조치후보고'의 지혜)

kbd112 2018. 2. 26. 08:48



관찰사의 결단


경북 왜관읍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돌밭종가'에는 

수백 년 세월의 풍상을 겪은 고목 세 그루가 나그네의 방문을 반겨주었다. 

고택에 서 있는 회화나무, 백일홍, 향나무는 선비 집안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회화나무는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던 어사화(御賜花)를 상징하고, 

백일홍은 선비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향나무는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상징한다. 

콩기름을 바른 한지 장판과 고서(古書)와 전적(典籍)이 서가(書架)에 가득 찬 

종손 이필주(李弼柱)씨의 방은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영남 선비 집안의 소박한 품격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쟁이 치열했던 숙종조. 종손의 12대조인 이담명(李聃命·1646~1701)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영남 남인들이 조정에 복귀할 무렵 경상관찰사로 임명됐다. 

당시 영남의 기근이 심각해 매일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구휼(救恤)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이때 마침 서울 조정으로 들어가는 세금을 실은 세곡선(稅穀船)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순천, 구례를 비롯한 전라좌도 지역의 세금으로 받은 쌀을 실은 배 여러 척이 

서해안 바닷길로 가지 않고 내륙인 낙동강을 거슬러 상주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관찰사 이담명은 이 세곡선을 대구 서쪽의 화원 나루터에다 정지시키고 

기민(饑民)들에게 쌀을 나눠 주었다. 서울 궁궐로 들어가야 할 국가 세금이었지만 

우선 당장 굶어 죽는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위험한 결단이었다. 

임금의 결재를 받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국가 세금을 관찰사 마음대로 썼다는 죄를 뒤집어쓸 수 있는 모험이었다. 

반대 당파인 노론이 십중팔구 이 사건을 문제 삼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담명은 '서울까지 이 세곡이 갔다가 다시 영남으로 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동안에 다 굶어 죽는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조정의 탄핵을 감수하고 세곡선을 정지시켰던 것이다. 

그 결단 덕분에 수만 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종손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이담명이 탄핵을 받았지만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영남 유림(儒林)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다.

​요즈음 정치인들이 본받아야할 일이다. 

정치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시기적절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의 희생자가 많아진 것은 최고지도자의 판단만 기다리다 

중간지도자가 시간을 놓친 경우라고 하겠다. 

때로는, '선조치후보고'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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